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경복궁 광화문 (문단 편집) === [[6.25 전쟁]] 이후 및 1968년 === ||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[파일:한국전쟁광화문.jpg|width=100%]]}}} || || {{{#gold '''6.25 전쟁 당시 폭격으로 파괴된 광화문.'''}}} || 이후 광화문 목조 문루 부분은 [[6.25 전쟁]] 때 포탄을 맞아 파괴되었고, 이로 인해 광화문은 석축만 남았다. 그러다 1968년에 남아있던 석축을 중앙청(구 조선총독부 청사) 앞으로 이전해 복원했다. ||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[파일:external/www.archives.go.kr/0002.jpg|width=100%]]}}} || || {{{#gold '''1968년에 복원한 광화문.'''}}} || 그러나 이 복원은 현대에 와서 다음과 같은 이유로 논란이 되었다. 우선 목조가 아닌 콘크리트 복원이었고([[http://veritasest.egloos.com/1767755|관련 링크]]) 폭격으로 인해 석축도 깨진 부분이 많아 전부 활용할 수 없었고, 남은 것은 기단부 안쪽에 넣어 가렸다.[* 《경복궁야화》 (탐구당, 1991년).] 아울러 광화문을 새로 지을 때 위치와 각도를 중앙청을 기준으로 잡으면서 원래 자리보다 뒤에 지었고, 각도도 3.75도 가량 틀어졌다. 조선 정부에서 경복궁을 지을 때, 근정전, 근정문, 흥례문, 광화문을 일직선으로 놓아서 왕이 근정전에 앉을 때 육조 거리까지 볼 수 있도록 설계했었다. 그러나 한편으로 구도는 일직선이었으나 방어의 목적으로 정중앙으로 완전한 일직선으로 놓지는 않았다는 의견도있다. 옛 성들과 문의 방향을 보면 방어의 목적이 반영되어 오른쪽으로 살짝 치우친 것을 금방 확인할 수 있다.[* 1968년의 광화문은 중앙청에 맞춰서 지었기 때문에, 중앙청 철거 이후에도 근정전 앞 월대에서 앞을 바라보면 광화문이 틀어진 모습이 보였다. 반대로 광화문 광장에서 근정전을 보려면 세 문 중 가운데 문이 아니라 왼쪽 문을 바라봐야 일직선 축에 맞게 보였다.] 또한 복원을 주도한 박정희는 문루에 한자가 아닌 자신이 쓴 한글 현판을 걸어놨다. 철근 콘크리트조로 복원한 자체는 1968년 당시에는 납득할 만한 결정이었을 지도 모른다.[* 지금도 경복궁 서쪽 문인 [[경복궁 영추문|영추문]]이 철근 콘크리트 식으로 남아있고, 멀리 떨어지지 않은 [[보신각]]도 철근 콘크리트 구조이다.] 나무와 돌로 지어진 전통 건축물을 철근 콘트리트조로 복원하는 것은 당시만 해도 전통의 파괴가 아니라 현대적인 신공법을 동원한 바람직한 복원으로 받아들여졌던 것. 이 쪽으로 꽤 꼼꼼하다고 알려진 일본도, [[https://ja.wikipedia.org/wiki/%E5%9B%9B%E5%A4%A9%E7%8E%8B%E5%AF%BA|1957~1963년]] 동안 [[사천왕사#s-3|시텐노지]]를[* [[곤고구미]]로 나름 유명한 절이다.] 복원하면서 목재를 쓰지 않고 철근 콘크리트로 쌓아 올린 바 있었다. 콘크리트 광화문 시기에는 조선총독부 정문 자리에 세워져 중앙청 정문 역할도 했고 통행량이 많은 세종로에 있다보니 국가적으로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기념 현수막이 여러 차례 걸리기도 했다.[* [[1986 서울 아시안 게임]]이나 [[1988 서울 올림픽]]은 물론이고 [[박정희]]-[[전두환]]-[[노태우]] 대통령의 해외 순방 향발/귀국 때도 현수막이 걸렸다.] 이는 중앙청이 [[국립중앙박물관]]으로 바뀐 후에도 마찬가지. 또한 자세히 보면 [[1968년]] 광화문 현판 제막 행사 사진에 드러난 한글 현판과, 2000년대까지 걸려있었던 [[https://imgnews.pstatic.net/image/032/2019/08/14/0002957187_003_20190829121210498.jpg?type=w647|한글 현판]]의 글씨가 서로 다르다. 둘다 박정희 글씨체이지만 전자는 정자체, 후자는 반흘림체이다. 정자체로 썼던 먼젓번 현판 글씨가 실제로 후자보다 다소 조악한 것을 알 수 있는데, 따로 현판 교체 행사를 갖지도 않고 며칠만에 슬그머니 반흘림체로 쓴 새 현판으로 교체되었다고 한다. 박정희 스스로 자기 글씨가 마음에 들지 않아 새로 써서 교체했다는 듯. 이와 관련하여 재미있는 일화가 있는데, 1968년 광화문 현판식이 있었던 날, 이름난 서예가 출신인 [[윤제술]] 국회부의장이 광화문 현판을 보더니 냅다 '''"아니, [[박정희|어느 놈]]이 저걸 글씨라고 썼냐!!!"'''하고 버럭 소리를 질렀는데, 옆에 있던 동료 정치인이 식겁한 표정으로 박정희를 가리키자 윤제술은 다시 큰 소리로 [[탈룰라(인터넷 밈)|"아, 그래도 뼈대 하나는]] [[애널 서킹|살아 있는 글이구먼!"]]이라고 했다고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